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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의 집 청소
- 양손에 납작하고 투박한 검은 상자 두 개를 들고 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저 높은 곳에 머무는 엘리베이터가 내가 서 있는 일 층까지 내려오길 잠자코 기다립니다. 현장에 처음 방문하는 날이면 엘리베이터는 아득한 곳에 기거하는 낯선 존재로 느껴집니다. 습관적으로 몇 번이나 고개를 들어 두 자리였던 붉은 숫자가 점점 겸손하고 낮은 숫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봅니다. 시선은 문 위의 숫자를 향하지만 그 숫자 하나하나의 의미가 마음에 스미지는 않습니다. 어쩌면 엘리베이터 앞에서의 시간이란 모든 이에게 그런 방식으로 공평하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겠군요. 지난달에 돌아가신 당신도 생전에 바로 이 문 앞에서, 짧은 순간이지만 이어보면 꽤 오랜 시간을 보냈겠죠. 서로 누군지도 모르는 우리는 이 시간을 공유하기 시작했습니다.
- 사실 내 일은 살아있는 사람을 괴롭히는, 죽은 사람이 만든 냄새가 가져다줍니다. 그 냄새를 극적으로 없앴을 때 내 비즈니스는 성공하지요. 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이 나에게 돈을 지급합니다.
- 용서하세요, 문 앞에 도착하더라도 애써 예의를 갖춰 벨을 누르지는 않겠습니다. 저 안에서 기다리는 것은 당신이 아니라 당신이 남긴 것이니까요.
- 그 스텝은 빠르고 직선적이지요. 이미 심장에 드리웠던 그림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심장을 옥죄던 어둠은 ‘실체의 구체적인 직시’라는 강렬한 태양을 만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자취를 감추곤 합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내 안에서 비롯되어 내 안으로 사라집니다. 한 번도 저 바깥에 있지 않았습니다. - 건물 청소를 하는 이가 전하는 그녀는 너무나 착한 사람이었다. 그 착한 여인은 어쩌면 스스로에게는 착한 사람이 되지 못하고 결국 자신을 죽인 사람이 되어 생을 마쳤다. 억울함과 비통함이 쌓이고 쌓여도 타인에게는 싫은 소리 한마디 못하고, 남에겐 화살 하나 겨누지 못하고 도리어 자기 자신을 향해 과녁을 되돌려 쏘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일 도구마저 끝내 분리해서 버린 그 착하고 바른 심성을 왜 자기 자신에겐 돌려주지 못했을까? 왜 자신에게만은 친절한 사람이 되지 못했을까? 오히려 그 바른 마음이 날카로운 바늘이자 강박이 되어 그녀를 부단히 찔러온 것은 아닐까?
- 주로 가난한 이가 혼자 죽는 것 같다. 때때로 부유한 자가 혼자 살다가 자살하는 일도 있지만, 자살을 고독사의 범주에 포함하는 문제는 세계적인 인류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니 일단 논외로 하자. 고급 빌라나 호화 주택에 고가의 세간을 남긴 채, 이른바 금은보화에 둘러싸인 채 뒤늦게 발견된 고독사는 본 적이 없다.
- 가난은 차별도 경계도 없다. 모든 생명체에 들이닥치는 죽음처럼….
-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만들어놓은 이해 불가의 쓰레기를 수습하러 온 나는 누구인가?
내가 이곳에 있는 진짜 이유는 무엇이고, 지금 나는 무엇을 발견하려고 하는가?
그는 왜 나라는 인간에게 이해되어야 하는가?
굳이 내 판단의 사슬에 그를 옥죄어야만 하는가? - ‘그는 자신의 인생을 살았을 뿐이다. 운명을 맞이한 순간까지 그는 죽을힘을 다해 자기 삶을 살았을 뿐이다.’
- 차라리 여기 있는 모든 것이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지금 여기에 모인 사람 가운데 특별하지 않은 이가 아무도 없다고 말하면 어떨까. 특별하다는 관념은 언제나 가치 없는 것이 있다는 믿음을 전제한다. 모든 것이 가치 있고 귀중하다면, 지금 여기에서 특별하지 않은 것이라곤 단 하나도 찾을 수 없다면 무척 행복하고 평화로울 것 같다.
- 어느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특별하다고 말하면 어떨까.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고귀하다고, 그리고 내가 하는 이 일도 너무나 소중한 직업이라고….
- 자살을 결심하고 그 뒤에 수습할 일까지 염려한 남자. 자기 죽음에 드는 가격을 스스로 알아보겠다며 전화를 건 남자. 도대체 이 세상에는 어떤 피도 눈물도 없는 사연이 있기에 한 인간을 마지막 순간으로 밀어붙인 것만으로 모자라, 결국 살아 있는 자들이 짊어져야 할, 죽고 남겨진 것까지 미리 감당하라고 몰아세울까?
- 밤은 청하지 않아도 기어이 찾아온다. 밝아오는 아침을 누구도 외면하지 못하듯 어둠은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단 하루의 유예도 없이 매일 밤 나를 방문할 것이다. 그것이 자연이 하는 일이다. 때로는 그 무심함에 질리고 때로는 그 변함없음에 안도한다. 그토록 장엄하고 공평무사한 밤이 찾아오면 모든 생각이 작고 부질없다.
- 수도꼭지의 아이러니는 누군가가 씻는 데 도움이 되고자 만들어졌지만 결코 스스로 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의 집이라면 그가 누구든 그곳이 어디든 가서 군말 없이 치우는 것이 제 일입니다만 정작 제가 죽었을 때 스스로 그 자리를 치울 도리가 없다는 점이 수도꼭지를 닮았습니다. 언젠가 죽은 이가 숨을 거두고 한참 뒤에 발견된 화장실에서 수도꼭지에 낀 얼룩을 닦으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의 도움 없이 살아갈 수 없다고.
인간 존재의 아이러니는 늘 죽음을 등에 지고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무릇 생명이 있는 존재라면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고, 그 사실에 누구도 예외가 없습니다. 삶과 죽음은 양면으로 된 동전처럼 한쪽만으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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